[알바임 알빠아님 - 2화 놀이의 레시피 (상)] 김유수



코믹 에세이




알바임 알빠아님




by 김유수




             



프롤로그

1화 <서빙의 재능>




아, 하기 싫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면 당연히 힘들고 재미없지. 놀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해. 그럼 얼마나 쉽고 재미있는데.




와 같은 말을 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게다가 밥을 먹다 그런 말을 듣는 건 정말이지 재미없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다른 점포의 실장님이라면 더욱더.





그림 전재민  





2화 놀이의 레시피 (상)





하루는 다른 점포의 주방실장님이 내가 일하는 점포로 출장을 왔다. 우리 점포의 주방실장님이 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주방 직원들은 보통 식사 때가 아니면 얼굴을 잘 못 본다. 그런데 그는 점심시간이 한참 남았을 때부터 홀에 나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더니, 내가 일하는 걸 계속 쳐다보았기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나중에 주워들은 바로는, 사장님에게 신임이 두텁고 가게의 지분도 조금 갖고 계신 듯했지만 알게 뭐람. 내게 월급을 주는 사이도 아닌데. 그날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곤 본인갈비탕의 고기를 내 뚝배기에 얹어준 것과, 갈비탕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준 것뿐이었다.

 


그 방법은 이랬다.


 

우선, 갈비탕이 나오자마자 갈비를 뚝배기에서 모두 건져낸다. 가위와 집게로 뼈를 분리해 앞접시에 살코기를 가지런히 눕히고, 그 위로 잘 섞은 와사비간장 소스를 고기의 등짝이 잠길 때까지 뿌린다. 고기는 뜨거운 뚝배기에 오래 두거나 접시 위에서 차갑게 식으면 금방 질겨진다. 그러니 밥과 함께 고기부터 해치운 다음, 남은 밥을 공기 째 탕국물에 털어 넣고 말아먹는 것이 중요하다. 가위와 집게를 쓰지 않고 직접 뜯어먹는다면 … 청출어람이다.


 

혹시 지금 갈비탕을 먹으러가려고 신발을 신었거나 핸드폰을 닫으려고 한다면 좀만 참았다가 다 읽고 나서 먹어 주시길 부탁드린다. 혹은, 너무 뻔하고 전형적인 방법 아니냐며 실망하신 분도 있을 거다. 실망했다면 미안하다. 나도 처음엔 의심했다. 하지만 의심하지 말고 일단 그렇게 먹어보시라. 어느 분야에서든 고전적이고 정석적인 방법이 통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가 그 방법을 가르쳐준 방식에 있었다. 덕분에 맛있게 잘 먹긴 했다만 굳이 자기 손으로 내 고기를 자르고 소스를 뿌려야 했을까. 조금 짰다. 얼마 전에 친구한테 짜게 먹는다고 잔소리를 들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조금 억울하다(이 자리를 빌어서 얘기하는데 그건 내 탓이 아니다). 아무튼 그는 살코기를 먹기 좋게 발라주기까지 한 후에야 내게 젓가락을 돌려주었고, 다 먹을 때까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알려준 대로 맛있게 먹으렴.’보다는 ‘알려준 대로 먹지 않으면 뒤진다.’에 가까웠기에, 나는 <VJ특공대>라도 방문한 것처럼 최선을 다해 맛있게 먹는 얼굴을 보여줘야 했다.


 

자기 고기를 나눠준 걸 감안했을 때 그가 심성이 나쁜 분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요리를 하시는 분이니까, 본인의 갈비탕에 대한 자부심이 약간은 과하게 튀어나온 걸게다. 그가 밥을 말고 있는 나를 쳐다보며 “일을 놀이처럼 생각하라”고 말했을 때도, 나를 위해 진심으로 조언한 걸게다. 그리고 나또한 그의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평소 힘들고 귀찮은 일거리를 마주할 때면   처음엔 외면하고 미루는 것부터 시작하지만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을 때면     나는 그것을 놀이처럼 여기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나는 나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며 온갖 역경을 이겨낸 끝에 꿈에 그리던 올림픽 결승전에 출전한다는 마음으로, 설거지나 운동화 세탁을 한다. 그의 말대로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신기록을 세우겠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하지만 그의 말이 가리키는 게 옳든 아니든 무슨 소용인가. 내가 그의 말에 불편함을 느꼈는데.


 

그럼 질문이 생긴다. 나는 왜 불편함을 느낀 걸까? 그의 화법 때문에? 그와 나의 수직적 관계 때문에? 언젠부턴가 어른들과 대화할 때면 꼰대감별사가 되어버리는 나의 습관 때문에?


 

그의 말이 테이블을 가로질러 내 고막을 지나 머리와 가슴으로 도착하기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복잡한 경로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일일이 지도로 그려내긴 힘들 테니까,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


 

갈비탕을 맛있게 먹기 위해선

뚝배기의 레시피보다, 함께 앉은 테이블의 레시피가 더 중요할 때도 있다.


그림 전재민  




알바를 보다 재밌게 하기 위해선 노동환경보다 노동을 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레시피는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 의미없는 휴지조각이 된다. 노동환경이 먼저 좋아져야, 노동을 하는 내가 좋은 마음가짐을 갖든 말든 할 거 아닌가.


  

게다가, “고깃집은 언제나 빡센 곳이다."


각종 알바의 후기를 올려서 인기를 누리는 모 블로거가 분명 그렇게 말했다.



*

 

잠시 알바 면접을 보았던 날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심함으로 꽉 차있는 나는, 면접 약속을 잡은 뒤로 집을 나서기 전까지 앞으로 일할 식당에 대해 사전조사에 착수했다. 네이버를 통해 알아본 결과, <몹식당(가명)>은 제법 유명한 맛집이었고, 주 메뉴인 한우스페셜은 내가 이틀을 일해야지 겨우 먹을 수 있었다. 투쁠의 질 좋은 한우만 취급하는데다가 식당의 내부는 고급스러웠으며, 조명은 흔한 형광등 대신 크리스마스 트리에나 달려있을 법한 전구들이 식탁 위로 알알이 걸려 있어 은은하게 내부를 밝혀주었고, 바닥의 재질은 비싸 보이는 나무였다. 연기를 식탁 밑으로 흡수하는 최신식 불판에(비쌀 것이다), 소금은 고든 램지가 쓴다는 코셔 솔트를 사용했으며(비쌀 것이다) 비싼 술도 많이 팔고 있었고 그런 걸 잔뜩 시켜놓고 찍은 후기가 많은 걸 보면, 정말이지 비싼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는 식당인 것 같았다.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하는 부담감에 ‘cosher salt'라는 생소한 영단어가 방점을 찍으며 잠시 걱정이 들었으나, 낙후된 식당에서 일하는 것보단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검색을 마쳤다. 하지만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차차, 나는 고개를 떨군다. 가장 중요한 정보를 빼먹고 만 것이다.


  

<몹식당>에선 직원들이 고기를 구워줘야 하는가?


  

네이버에서든 면접에서든, “내일부터 출근하겠다”는 말을 하기 전에 나는 그것부터 먼저 알아냈어야 했다.

(계속)



/ 작가 소개




덧글

  • 불타는 바다표범 2017/12/31 09:29 # 삭제 답글

    어쩌면 꼰대들한테는 우리가 꼰대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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