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임 알빠아님 - 2화 놀이의 레시피 (상)] 김유수



코믹 에세이




알바임 알빠아님




by 김유수




             



프롤로그

1화 <서빙의 재능>




아, 하기 싫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면 당연히 힘들고 재미없지. 놀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해. 그럼 얼마나 쉽고 재미있는데.




와 같은 말을 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게다가 밥을 먹다 그런 말을 듣는 건 정말이지 재미없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다른 점포의 실장님이라면 더욱더.





그림 전재민  





2화 놀이의 레시피 (상)





하루는 다른 점포의 주방실장님이 내가 일하는 점포로 출장을 왔다. 우리 점포의 주방실장님이 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주방 직원들은 보통 식사 때가 아니면 얼굴을 잘 못 본다. 그런데 그는 점심시간이 한참 남았을 때부터 홀에 나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더니, 내가 일하는 걸 계속 쳐다보았기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나중에 주워들은 바로는, 사장님에게 신임이 두텁고 가게의 지분도 조금 갖고 계신 듯했지만 알게 뭐람. 내게 월급을 주는 사이도 아닌데. 그날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곤 본인갈비탕의 고기를 내 뚝배기에 얹어준 것과, 갈비탕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준 것뿐이었다.

 


그 방법은 이랬다.


 

우선, 갈비탕이 나오자마자 갈비를 뚝배기에서 모두 건져낸다. 가위와 집게로 뼈를 분리해 앞접시에 살코기를 가지런히 눕히고, 그 위로 잘 섞은 와사비간장 소스를 고기의 등짝이 잠길 때까지 뿌린다. 고기는 뜨거운 뚝배기에 오래 두거나 접시 위에서 차갑게 식으면 금방 질겨진다. 그러니 밥과 함께 고기부터 해치운 다음, 남은 밥을 공기 째 탕국물에 털어 넣고 말아먹는 것이 중요하다. 가위와 집게를 쓰지 않고 직접 뜯어먹는다면 … 청출어람이다.


 

혹시 지금 갈비탕을 먹으러가려고 신발을 신었거나 핸드폰을 닫으려고 한다면 좀만 참았다가 다 읽고 나서 먹어 주시길 부탁드린다. 혹은, 너무 뻔하고 전형적인 방법 아니냐며 실망하신 분도 있을 거다. 실망했다면 미안하다. 나도 처음엔 의심했다. 하지만 의심하지 말고 일단 그렇게 먹어보시라. 어느 분야에서든 고전적이고 정석적인 방법이 통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가 그 방법을 가르쳐준 방식에 있었다. 덕분에 맛있게 잘 먹긴 했다만 굳이 자기 손으로 내 고기를 자르고 소스를 뿌려야 했을까. 조금 짰다. 얼마 전에 친구한테 짜게 먹는다고 잔소리를 들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조금 억울하다(이 자리를 빌어서 얘기하는데 그건 내 탓이 아니다). 아무튼 그는 살코기를 먹기 좋게 발라주기까지 한 후에야 내게 젓가락을 돌려주었고, 다 먹을 때까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알려준 대로 맛있게 먹으렴.’보다는 ‘알려준 대로 먹지 않으면 뒤진다.’에 가까웠기에, 나는 <VJ특공대>라도 방문한 것처럼 최선을 다해 맛있게 먹는 얼굴을 보여줘야 했다.


 

자기 고기를 나눠준 걸 감안했을 때 그가 심성이 나쁜 분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요리를 하시는 분이니까, 본인의 갈비탕에 대한 자부심이 약간은 과하게 튀어나온 걸게다. 그가 밥을 말고 있는 나를 쳐다보며 “일을 놀이처럼 생각하라”고 말했을 때도, 나를 위해 진심으로 조언한 걸게다. 그리고 나또한 그의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평소 힘들고 귀찮은 일거리를 마주할 때면   처음엔 외면하고 미루는 것부터 시작하지만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을 때면     나는 그것을 놀이처럼 여기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나는 나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며 온갖 역경을 이겨낸 끝에 꿈에 그리던 올림픽 결승전에 출전한다는 마음으로, 설거지나 운동화 세탁을 한다. 그의 말대로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신기록을 세우겠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하지만 그의 말이 가리키는 게 옳든 아니든 무슨 소용인가. 내가 그의 말에 불편함을 느꼈는데.


 

그럼 질문이 생긴다. 나는 왜 불편함을 느낀 걸까? 그의 화법 때문에? 그와 나의 수직적 관계 때문에? 언젠부턴가 어른들과 대화할 때면 꼰대감별사가 되어버리는 나의 습관 때문에?


 

그의 말이 테이블을 가로질러 내 고막을 지나 머리와 가슴으로 도착하기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복잡한 경로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일일이 지도로 그려내긴 힘들 테니까,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


 

갈비탕을 맛있게 먹기 위해선

뚝배기의 레시피보다, 함께 앉은 테이블의 레시피가 더 중요할 때도 있다.


그림 전재민  




알바를 보다 재밌게 하기 위해선 노동환경보다 노동을 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레시피는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 의미없는 휴지조각이 된다. 노동환경이 먼저 좋아져야, 노동을 하는 내가 좋은 마음가짐을 갖든 말든 할 거 아닌가.


  

게다가, “고깃집은 언제나 빡센 곳이다."


각종 알바의 후기를 올려서 인기를 누리는 모 블로거가 분명 그렇게 말했다.



*

 

잠시 알바 면접을 보았던 날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심함으로 꽉 차있는 나는, 면접 약속을 잡은 뒤로 집을 나서기 전까지 앞으로 일할 식당에 대해 사전조사에 착수했다. 네이버를 통해 알아본 결과, <몹식당(가명)>은 제법 유명한 맛집이었고, 주 메뉴인 한우스페셜은 내가 이틀을 일해야지 겨우 먹을 수 있었다. 투쁠의 질 좋은 한우만 취급하는데다가 식당의 내부는 고급스러웠으며, 조명은 흔한 형광등 대신 크리스마스 트리에나 달려있을 법한 전구들이 식탁 위로 알알이 걸려 있어 은은하게 내부를 밝혀주었고, 바닥의 재질은 비싸 보이는 나무였다. 연기를 식탁 밑으로 흡수하는 최신식 불판에(비쌀 것이다), 소금은 고든 램지가 쓴다는 코셔 솔트를 사용했으며(비쌀 것이다) 비싼 술도 많이 팔고 있었고 그런 걸 잔뜩 시켜놓고 찍은 후기가 많은 걸 보면, 정말이지 비싼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는 식당인 것 같았다.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하는 부담감에 ‘cosher salt'라는 생소한 영단어가 방점을 찍으며 잠시 걱정이 들었으나, 낙후된 식당에서 일하는 것보단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검색을 마쳤다. 하지만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차차, 나는 고개를 떨군다. 가장 중요한 정보를 빼먹고 만 것이다.


  

<몹식당>에선 직원들이 고기를 구워줘야 하는가?


  

네이버에서든 면접에서든, “내일부터 출근하겠다”는 말을 하기 전에 나는 그것부터 먼저 알아냈어야 했다.

(계속)



/ 작가 소개




릴레이 인터뷰 5. 조원효 "내 시를 마주하는 독자들과, 뭐든 다 해보고 싶은 거지" 릴레이 인터뷰



<조원효 등단 인터뷰>


  

조원효

1998년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중
<몹쓸> 동인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 당선




Intro.

  조원효는 솔직한 친구다. 자신감이 넘친다. 이런 성향 탓인지. 원효는 때로 거침없어 보이고, 어쩔 땐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시도 그렇다. 원효의 시는 거침없이 새로운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안주하려 들지 않는다. 지나간 것들에 대체로 미련두지 않고서 스무살 이십대. 그 당시에만 쓸 수 있는 감수성을 믿고, 시를 밀고나간다. 그렇게 원효는 올해 가을 <현대시> 신인추천으로 등단을 했다. 우리 <몹쓸>의 바보4 정도를 담당하던 원효가 덜컥 등단을 했다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축하가 앞섰다. 등단에 대한 축하라기보다는 앞서 말했던, 본인이 믿고서 밀고나가는 감성을 인정받은 것에 대한 축하였다. 이 인터뷰는 등단에 대한 축하와 더불어 원효가 인식하는 스무살을 들어보는 자리가 될 것 같다. 일찍이 시인이 된 기분도 궁금하다. 최근에는 원효가 시를 통해 새롭게 구축하고 있는 감수성이 있다고 하니, 한번 들어보도록 하자.



 

Q 1.

임동민 : 우리 독자분이 해주신 질문부터 먼저 해볼까. 문학적인 것과 문학적 허세를 구분하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는가. 이게 궁금하다고 했어.

 

 

조원효 : 백 퍼 있기는 해, 나는 있다고 생각해. 문학적인 건 오히려 문학적인 것이, 되지 않으려고 할 때 나오는 것 같아. 반대로 문학적 허세는 문학적인 것만을, 시도하려 들 때 나오는 것 같고. 문학적 허세에도 두 가지 갈래가 있다 생각해. 건강한 예술병과, 자신의 아픔만을 치켜세우는 예술병.


사실 예술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잖아. 그런데 예술적 야망이 이상한 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지. 자신의 아픔, 자신을 망가뜨리고 세상에게 내가 아픈 것만을 알아주길 바라는 거. 자해 행위를 하는 거. 이런 행동들을 예술적 행위라고 치부하는 건 극단적인 문학적 허세라 생각해. 반대로 문학적인 성취를 위해서 끈질기게 노력하고 그 분야에 대해 탐구하고 빠져들고, 몰입하고, 젖어가는 건, 문학적 열정이 건강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예술병, 좋은 방향으로 작동하는 예술병이겠지.


다른 예로 이젠 내가 시인이다, 시인이니까 호기를 부리고, 기행을 벌이고 하는 행동들은 너무 짜치는 것 같아. 그런 시대는 끝났어. 젊고 건강하게. 죽을 때까지 쓰는 것. 그게 가장 멋진 시인의 업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Q 2.

임동민 : 이 인터뷰가 등단 소식을 알리고 축하하는 자리기도 하니까, 간단하게 스무 살 등단이 너한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건지 말해줘.

 

 

조원효 : 처음에는 기뻤어. 십대 때 많은 기회가 있었고 나한텐 좋은 환경도 있었어. 나는 정말 시인이 되고 싶었고 등단이라는 걸 너무나 하고 싶었어. 그런데 오히려 등단을 하고 한 달이 넘었는데, 지금은 담담한 것 같아. 등단을 해서 좋은 것 보다는, 등단을 했다는 부담감에 열심히 쓸 수 있다는 게 행복한 것 같아.


처음엔 등단이 압박감으로 다가왔거든. 어리기도 하고, 어떤 텍스트를 내든 평가가 내려질 거고. 기존의 프로들과 비교하는 지점들이 있을 거 아냐. 그런데 이제는 기존 프로들과 부딪쳐야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더 쓰게 하는 힘이 됐어. 찾아 읽게 되는 텍스트도 많아졌고, 최근엔 시집을 잘 안 읽어, 데리야마 슈지 같은 일본작가의 소설이나, 독립 영화들을 많이 찾아보고, 밀도 높은 작품들을 찾아 읽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어.

 

 

 

Q 3.

임동민 : 사실 같은 대학 친구들이나 습작생 친구들이 주변에 많잖아. 물론 등단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도 있을 거고. 그 친구들이 너에게 보이는 반응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야?

 

 

조원효 : 축하를 해주는 친구들이 많아. 그런데 솔직히 그런 친구들의 말 속에도 시기 질투가 섞여있는 것 같기도 해. 친구들이 복합적인 감정을 섞어서 하는 축하의 말들을 들을 때는, 그만큼 더 써야겠다는 생각밖엔 안 들어. 애들이 내 글을 보는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더 질 좋은 텍스트를 쓰는 게 목표야.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스무 살의 조원효가 중요하다 생각하거든. 곁에 있는 친구들이 나를 여전히 모자란 조원효로 대해 주고, 같이 글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내겐 고맙지.

 

 

Q. 4

임동민 : 개인적으로는 몹쓸 활동 과정 중에 등단 소식을 보게 돼서 기뻤어. 너에게는 과정에 있어서 몹쓸이 어떤 의미인지?

 

조원효 : 원동력 이런 말은 좀 뻔하고, 첫 번째는 솔직히 경쟁이었지. 나랑 스타일이 다른 애들이랑 같은 날 한데 모여서 다양한 텍스트들을 마주 볼 수 있다는 게 나한테는 자극이 되는 거지. 무조건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야. 이번 주는 내가 찢는다. 이번 주는 내가 애들을 다 입 벌리게 한다. 다음 주는 몰라, 그러나 이번 주는 몹쓸 애들에게 가장 좋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을 써온다. 이런 스포츠 같은 경쟁의식이 좋아.


 너희만 바라보고 썼기 때문에 다른 독자들을 생각을 안 해. 일단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어. 다른 친구들, 많은 사람들까지 생각한다면 시편들이 더 장황해졌을 것 같아. 당장의 타겟은 너희거든. 당장, 어떻게 글을 쓰던 타켓은 너희니까. 너희를 입 벌리게 하고 싶은 거지. 징그러운 경쟁인 거지. 그게 힘이야.

 

임동민 : 나도 그게 좋아. 우리 합평은 서로 상처받을 만큼 과격하게 하잖아. 근데 그것도 다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있고, 다들 너처럼 경쟁심을 갖고 오니까. 입 벌리게 하고 싶어 하니까.

 

조원효 : 맞아. 몹쓸은 나를 여유롭게 만드는 동시에, 긴장감을 주기도 하거든.

 

Q 5.

임동민 : 혹시, 경쟁이라는 키워드처럼 몹쓸에서 강화했으면 하는 성격은 뭐야. 그냥, 그런 성격의 모임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얘기해줘.

 

조원효 : 솔직히 그런 생각 있었어. 나는 제도권 안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예술적 모임에 대한 환상이 컸어. 갈증이었지. 십대 때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 무조건 작가, 프로가 되면 동인의 형식을 띄는 단체를 만들겠다는 것이 내 첫 번째 목표였어. 예를 들면 무용하는 사람, 영화 찍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글 쓰는 사람 등의 성격을 띤 사람들 여섯 명 정도 모아서 무작정 작업실을 구하는 거야. 거기서 같이 작업을 하고, 영상도 제작하고, 시도 제작하고, 전시도 열고 다양한 시도들을 하는 거야.

 

이야-(동민, 재민 동시 감탄).

 

 

조원효 : 파라다이스지. 독특한 단체를 만들고 싶어. 스무 살 중후반쯤에는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만들 수 있으면 만들고 싶어. 네다섯 명 정도 해서, 진짜 시만 쓰는 동인을 갖고 싶기도 하고. 근육은 매일 움직여야 하잖아. 매일 반복적으로 근육을 움직이듯이, 치열하게 시만 생각하는 사람들과도, 동인 하나는 만들고 싶다? (웃음)

 

 

Q 6.

임동민 : 나도 개인적으로 출판이 끝나면, 그때의 합평회가 경쟁적으로 계속되었으면 좋겠어. 이건 몇 가지 에피소드들인데, 내가 아빠한테 책 1000부를 팔아야 된다니까 너무 어렵게 쓰지 마, 라고 하시는 거야. 어렵게 쓰면 안 팔린다고. 아빠는 내 글도 어려워하시거든. 그리고 또 최근에 친구를 만났는데, 비슷한 얘기를 하는 거야. 요즘 시나 소설은 어렵다고. 좀 무책임한 것 같기도 하다고. 그런데 이런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이 우리의 미래 독자이기도 하잖아. 이런 미래 독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조원효 : 옛날에는 솔직히 말하면, 독자 작가가 소통의 간극을 좁히려면 독자의 눈이 높아져야 하는 게 아닌가 했거든. 그런데 요즘에는 바뀌었어. 이 소통이란 부분은 작가가 충분히 노력할 수 있는 몫이라 생각해. 요즘 나는 슬픔에 대해 많이 고민하거든. 신파를 다루는 방식에 꽂혔다고 볼 수 있는데, 신파도 쓰면 잘 쓸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해. 신파적인 감성을 쓰는데, 단지 감각적이고 우회적으로 쓰는 거지. 직접적인 게 아니라, 슬픔을 세련되게 돌려서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슬픔이라는 감정만 전달되면 독자랑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겠다 생각하게 된 거야.

 

뻗어나가는 사유나 문장들이 독자에겐 난해하고 해석하기 어려워도, 감정만 전달된다면 괜찮지 않을까.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세대가 경험한 슬픔을 내 방식대로 재구성하고 재정립할 수 있겠다. 어쨌든 나는 텍스트 작업을 계속 해나가는 거고. 다양한 실험들을 텍스트 안에서 하는 거고. 파편 같은 문장 속에서 독자가 나의 슬픔만을 느낀다면. 그거면 족해. 그렇게 계속 쓰다보면 내 시를 읽는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자연스럽게 넓어지지 않을까,

 

 

Q 8.

임동민 : 사실 <몹쓸> 활동이라는 게, 문학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좀 더 자유로운 스탠스를 가져보자, 라는 의미가 있잖아.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 문단 체제에 신인으로서 진입을 한 건데, 여기서 네가 어떤 위치를 만들어 가야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조원효 : 나를 너희가 잘 잡아주는 것 같아. 등단을 했고 문학 시스템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갔잖아. 과연 들어간 게 정말 들어간 걸까? 달라지는 건 없거든.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청탁을 받고 지면에 시를 싣는 것만으로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냥 너희가 옆에서 우리는 문인 흉내 내지 말자, 기존의 제도에 편승하지 말자는 식의 태도를 보여줄 때마다 나를 잡아주는 느낌은 있어.


더불어서 이 문단의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생각도 들고. ‘지면에 글을 싣는 건, 문학 제도를 단순하게 이용하겠다는 가벼운 마음인거지래퍼들이 쇼미더머니에 나와서, 나는 그냥 돈을 벌려고, 인기 많아지려고 나간다고 하듯이. 등단이라는 제도를 밟고, 문학 시스템을 가볍게 이용하겠다는 게 내 태도인 거지. 몹쓸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막무가내 정서처럼, 문인 흉내 내지 말자고. 그저 친구들이랑 똑같이 쓰고 똑같이 지내는 거지. 그래서 너희한테는 고마워. 자꾸 나를 자각시켜주니까.

 


나도 질문 있어. (재민)

 

 

전재민 : 출판사에서 우리한테 기존 문학에 지형을 바꿔보자는 얘기를 했잖아. 사회적으로, 정치로서의 예술을 할 수가 있고, 아니면 그냥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즐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만약 몹쓸이 기존 문학에 관해서 맞닥뜨리는 지점이 생긴다면 둘 중에 어느 태도를 취하는 게 좋을 것 같은 지. 어느 쪽에 가까운지.

 

 

조원효 : 몹쓸은 둘 다 안했으면 좋겠는데. 좀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사회적인 것 쪽인 것 같아. 사회를 관통하는 메시지들을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아도 그것을 작품 안에 내포하고 있어야 하진 않나 싶어. 사회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정치적 사건들 앞에서 침묵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 세대의 현실적인 요소들을 글에 내포하지 않는다면. 당장은 쓸 수 있겠지, 그런데 그것이 과연 작가로서 계속 성장해나가고 우리의 내면을 파보는 데 도움이 될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결론은 몹쓸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그 둘 다에 속하지 좋겠어.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우리가 온전히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 안에서, 좀 더 은유적으로 사회적인 부분들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생각해야겠지. 그렇다고 메시지를 직접 던지자는 건 아니야. 단지 그 메시지를 생각하는 지점들이 견고해졌으면 좋겠다는 거야.

 

Q 9.

임동민 : 원효 시를 독자분들한테 좀 보여주고 싶다. 이번 <현대시>에 실린 시중 너가 가장 아끼는 시는?

 

조원효 : 나는 음.. , <바그다드 물류목록> 인 것 같아. 처음에는 그게 당선작으로 뽑혔다고 했을 때 이해가 안 갔어, 왜 이 희곡 형태의 시를 당선작으로 뽑았지? 근데 지금 쓰는 바이브vibe로는 그때처럼 못쓰겠어. 못쓰겠는데, 그때만 쓸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


바그다드 물류 목록이랑 당선된 시들이 대부분 고3때 쓴 시들이란 말이야. 이때만의 감성이 있던 것 같아. 바그다드 물류 목록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실험적이고 개성 넘치는 형태가 어느 정도 구현된 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다시 읽었을 때는, 왜 뽑혔지 라는 생각이 바뀌었어. 애착이 갔어. 어쨌든 지금은 그때처럼 못쓰겠다는 거지. 몸이 바뀐 것 같아. 앞으로 몸이 더 바뀌었으면 좋겠고.

 

Q 10.

임동민 : 예전에 원효가 나를 인터뷰했지, 그때 문학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한 게 기억이 나. 너는 뭐야? 이게 마지막 질문이야.

 

조원효 :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당장 시에서만 얘기하면 시는 일단 리듬인 것 같아. 리듬이고, 리듬이 없는 글은 약간 생기가 없다고 해야 하나. 건조해. 물론 이 건조함도 리듬이 될 수는 있지만. 어쨌든 분명 문학만이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 영화는 눈에 보이고 음악은 귀에 들리잖아. 그런데 문학은 일인칭 예술이잖아. 계속 그 사람의 고백을 보는 거잖아. 시는 특히나 그렇고.


문학은 사실 지루하거든. 그런데 이 모종의 지루함이 할 수 있는 게 있어. 그래서 나는 지루하지만 격렬한 시를 쓰고 싶어. 모순적인 말이지? 그러니까 화려하지만, 화려함이 끝난 뒤에는 어떤 적막과 지루함만 남는 시. 그런 시를 쓰고 싶다는 말이야. 이어폰으로 음악을 너무 크게 듣고 나면 귀 속에 이명처럼 삐하는 소리가 나잖아. 화려한 음악이 끝나고 나서 삐하는 소리, 그 잡음, 그 작은 소음 같이 남는 시를 쓰고 싶어. 그게 목표야. 그런 시를 쓰기 위해선 리듬이 생명인 것 같아. 가독성이 있어야 하고, 당장 리듬이 필수지. 나는 리듬을 갖고 노는 시인들의 작품에서 자주 희열을 느끼니까.

 

누구보다 리드미컬한 시를 쓰고 싶어. 나의 리듬 속에서 독자들을 멀미나게 하고 싶고, 독자들의 감정을 난도질 하고 싶고, 결국은 독자들을 쓰러뜨리고 싶지. 그저 내 시를 마주하는 독자들과, 어떤 방식이든 뭐든 다 해보고 싶은 거지.



김희성의 <몹쓸신잡 - 예술 편> 1.


1

 

We are, we are, we Artist, baby!

한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

 

 

 

이번 장의 제목은 모두가 아시다시피 유명 아티스트 지코(ZICO)’의 노래 ‘Artist’의 후렴구입니다. 노래의 제목에서부터 그는 자신이 아티스트, 즉 예술가임을 밝힙니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나 이것저것 다 적기에는 귀찮기도 하고, 읽기에도 귀찮으시겠죠? 그래요. 예술가는 그런 예술을 만드는 창작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예술가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예술가란 뭔가 알 수 없고 말하기도 힘들고 전문가들도 각자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는, 일종의 직업적 특수성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성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선 예로부터 이런 말이 있기도 했죠. ‘예술로는 돈 못 벌어먹는다.’ 한숨 나오는 말이지만, 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 그 까닭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 그건 대체 왜 돈 못 벌어먹는다는 소리를 들어야하는 걸까요.

 

사실 첫머리부터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저도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꺼내야겠습니다. ‘최고은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979년 안양에서 태어나 2002년 단편 영화로 데뷔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예술가였습니다. 한국 최고의 예술교육학교라고 할 수 있는 한예종영화과를 졸업했고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졸업 이후 차기작이 불발되어 생활고를 겪게 되었죠. 그는 극심한 굶주림에 세입자에게 도와달라는 쪽지를 남기기도 합니다.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이런 내용의 쪽지였고, 세입자는 쪽지를 본 뒤 음식을 챙겨 그를 찾았지만, 그는 이미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굶주림과 더불어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던 것이 그의 사망 원인이었습니다. 사건 전에도 비슷한 사건사고들이 많이 발생한 탓에, 정책자와 국회의원들은 예술인 복지에 관한 법률을 활발하게 발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줄곧 미루어지던 예술인 복지법은 결국 한 생명을 떠난 후, 2011년 제정되었습니다. 일명 최고은법이라고 불리는 예술인 복지법의 시작입니다.

 

, 예술인 복지법이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복지 지원을 통해 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제정된 법입니다. 한국은 2012, 예술인 복지법 제정에 이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설립하며, 이에 관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예술인 복지법은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쉬움을 담고 있습니다.

 

1. 예술인 복지법, 일명 최고은 법에 최고은 씨는 대상이 아니다

 

현재의 예술인 복지법에서 규정하는 예술인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예술인 증명이 가능한 자를 의미합니다. 자격증을 부여하지 않았을 뿐, 대한민국에서 나는 예술가요!”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증명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 “we are artist”라고 말했던 지코 씨는 과연 증명을 받고 이런 말을 한 걸까요?

 

예술인 활동 증명에는 직군별 기준이라는 게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인은 5편 이상의 작품을 문예지 등에 발표해야 하며, 배우는 3편 이상의 연극 공연에 출연해야 하는 등 그리고 인정하는 문예지 또는 공연도 정해져 있고 blah blah blah blah.... 정말 많은 기준들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점수제로 심사되어 발표 받게 되는 방식이죠. 물론! 기준에 해당되는 예술인은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의 대상자가 되어 창작과 생계에 큰 도움을 받고 활동할 수 있습니다. 200억 원 내외의 예산을 통해 창작준비금, 경력지원 등 수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예술인 복지법>이 지원해주기 때문이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따르면, 예술 활동을 증명한 예술인은 20152만 여 명에서, 2016년 약 35천 여 명으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최고은 씨와 같은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고, 경력이 적은 예술가에게는 출품이나 공연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이러한 혜택을 받기가 수월하지는 않습니다.

 

2. 예술인은 노동자일까?

 

예술인은 노동자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림을 그리고, 연기를 하고, 글을 쓰는 작업이 노동으로 여겨질 수 있는 걸까요?

 

사실 그러한 창작 활동을 노동이라고 부르기는 뭐,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노동만큼이나 힘든 건 팩트인 듯 하구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을 노동이라고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러한 활동을 하는 예술가를 노동자라고 부를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술인은 예술인이지, 어떻게 노동자가 되냐구요? 그리고 이 문제가 왜 중요하냐고요? (혼자서 자꾸 질문하려니까 오그라들고 힘들군요. 하지만 이럴수록 비장하게 말해보겠습니다.)

 

그 이유는! ‘노동자라는 지위가 인정될 경우 국가에서 보장하는 환경들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근로자는 의무적으로 4대 보험의 가입 대상이 됩니다. 시간제, 일용직, 뭐 다양한 성격의 근로 형태에 따라 그 적용 범위와 대상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 참고로 <몹쓸신잡>은 그 정도로 파고들만한 여력이 없어요. 어쨌든, 이러한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예술인 복지법>에서 의무적으로 예술인에게 적용하는 보험은 4대 보험 중 산재 보험만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자꾸 고인을 언급해 죄송스럽지만, 최고은 씨는 산재로 인해 사망한 경우도 아니랍니다.

예술가는 특수한 형태의 근로자입니다. 예술인 복지법은 그러한 특수한 형태를 고려하여 예술인을 복지하기 위한 법이지만, 이 경우에는 그 특수성에 예술가를 고립시키는 결과가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굉장히 전통적인 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꼭 이럴 때 해외 사례와 많이들 비교하더라고요. 저도 한 번 해보겠습니다.

 

독일 : 일반 사회 보험제도 적용. 임금근로자와 같은 법적 지위 부여. 장르별 연금제도 운영. 특별수당, 건강 보험, 연금 보조 지원(예술인 사회보장법)

 

프랑스 : 일반 사회 보험제도 적용. 임금근로자와 같은 법적 지위 부여. 비정규직 공연 예술인에게 최대 8개월 실업 급여 지급 및 특별수당, 실업급여, 연금보조 지원(앙떼르미땅)

 

이탈리아 : ENPALS(특별사회보장) 인증. 비정규직 공연 예술인에게 실업급여 및 사회보험 포괄 제공.

 

한국 : 특별수당, 건강보험, 실업급여, 연금보조 전부 NO(예술인복지법)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외에도 캐나다, 일본, 아일랜드, 룩셈부르트, 스웨덴 등 많은 나라의 사례들을 알고 있습니다. 자랑이에요. 잘 보시면, 중간에 옥에티가 하나 껴 있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들죠? 참고로 독일은 무섭게도 예술인의 직군을 223종으로 세분화하여 모두 다 다른 법률을 적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기준 따위 정해둔 것 없이 모든 예술가에게 근로자 지위를 부여한다고 하네요. 이처럼 예술가를 특수근로자또는 근로자/노동자의 지위로 인정하는 것은 많은 의미를 포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날카로운 시선으로만 바라본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의 현실이 실정에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의료보험 같은 경우에는 사업자 쪽에서 먼저 제시하지만, ‘반반부담이라는 원칙으로 인해 예술가 쪽에서 거부하는 사례도 다수 생겨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어려우셨나요? 한 마디로 지금 돈도 없는데, 보험에 또 돈을 들 필요가 뭐가 있어, 하면서 예술가가 먼저 보험 혜택을 거부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 또 하나 안타까운 사례가 있습니다.

 

20039, 한 예술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7. 유가족은 보험회사인 삼성화재에게 손해배상금을 청구했지만, 삼성화재 측은 소송에서 엄청나게 신박하고 놀랍고 획기적인 이의를 제기합니다. 유가족 측은 길을 가다 차에 치인 피해자에게 과실이 전혀 없으며, 그가 예술활동을 이어온 경력이 10년에 가깝고, 70세까지는 전과 같은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다는 점으로 소송을 청구했지만, 삼성화재 측은 피해자 과실이 70%이며, 그의 가동연한은 60, 그리고 피해자의 예술경력과 수입을 불인정한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피해자 과실 70%, 즉 예술가인 피해자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자살충동을 느껴 이 사건이 자살과 다름없다라는 주장을 펼친 것입니다. 또한 미술계의 유망한 인재였던 그의 예술경력을 부인하고 무직자로 치부하며 예술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무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구본주. 이 사건에 격분한 예술인들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삼성화재 본관을 비롯한 각 도시에서 일인시위를 하기 시작하자 삼성화재는 유족과 합의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예술인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일어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잠시 진지해졌군요. (나쁜 삼성!) 아무튼,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구요.

 

3. 왜 자꾸 우리를 이용하는가!

 

2002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이러한 공약을 내세웁니다. ‘문화예술인복지조합 설립!’

2004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문화예술인 최소 생계유지법안 마련!’을 약속합니다.

 

결과는 뻔하지만, 뻥이었죠.

 

예술인 복지법은 2009년 처음으로 시안이 마련되었습니다. 초반 정책의제를 살펴보면, 법안을 발의했던 정병극, 서갑원, 전병헌, 최종원 의언의 정책에는 예술인근로자의제’, ‘고용보험법 특례’, ‘산재보상’, ‘건강보험’, ‘복지기금모두가 일부 또는 전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2011년 제정된 예술인 복지법에는 산재보상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삭제된 채 시행되었습니다. 예산 역시 법안 마련 시 500억 원에 이르던 것이, 국회예산안에서 350억으로 줄더니, 현재는 200억 원 내외로 절반 이상 줄고야 말았죠. 한 예술가가 죽는 사건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여태껏 제대로 된 정책이 실시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까기에 바빴던 것 같지만, 사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도, 딜레마도 따릅니다. 그리고 문제가 많았던 박근혜 정부에서도, “! ! ! 예술지원 하자!”라는 슬로건을 통해 자유, 자존, 자립이라는 항목으로 예술인 창작 지원과 안전망 구축에 힘을 쏟은 공무원들이 많았습니다. 표준계약서 개발과 보급, 경력정보시스템 구축, 예술인 패스 등 많은 정책들이 추진되기도 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이렇게 쓰고만 있는 제가 뭐라 하기에 노력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몹쓸신잡>의 독자 여러분은 관심을 가지시되 본인의 시선으로 이러한 사실들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2015년 기준 창작활동을 통해 얻은 수입이 없는예술가는 37.4%. 연극인에 한정하면 1년 간 200만 원 이하의 수입을 버는 사람들이 50%에 이릅니다. we are, we are, we artist, baby! 라는 경쾌한 노래가 어쩌면 슬픈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술가가 배고프다? NO!

예술가는 돈에 욕심이 없다? NO!

 

다만, 우리는 예술가이며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도록 환경만 갖추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생계유지를 위한 긴급 복지에만 예술가 지원의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슨 불치병 걸린 것도 아니고, 우리를 위한 36524시간 대기 119가 필요한 건 절대 아닌데 말이죠. 특수한 직종의 사람들이지만, 특수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제가 아는 한, 사람이 못된 예술가는 있어도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김희성의 <몹쓸신잡 - 예술 편> 0. 김희성


<몹쓸신잡>

예술 편

 

 

몹쓸잡학사전을 펼친 여러분, 혹시 나영석PD의 예능 프로그램처럼 유익하고 재미있는 걸 기대하셨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아주 조용히 다시 덮어두시길 바랍니다. 괜히 오바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재미없거든요. 그래도 자신의 끈기와 인내를 시험해보기 위해 꿋꿋하게 읽어보시겠다구요? 좋아요. 간단히 소개를 해볼게요.

이건 김희성의 <몹쓸신잡>이에요. 예능과 인문학이 결합된 소재들이 요즘에는 너무나 많지만, 여기서는 그런 구분이 필요 없어요. 벌써 글자가 많잖아요? 재미없는 인문학이에요. 사실 예술 편이라는 부제를 달았지만 의미 없어요. 그나마 제가 다룰 수 있는 게 이 정도라 그래요. 이런 걸 쓰는 이유가 궁금하신가요? 사실 그렇게 선한 지식인의 태도를 갖고 있지는 않아요. 그냥 이렇게 뭐라도 쓰는 게 제 공부에도 편하고, 재미있으니까요. 독자에게 열린 태도로 다가가는 것처럼 느끼겠지만 모두 제 자신을 위한 겁니다. , 그래도 잡학사전이라는 명성에 먹칠을 할 수는 없으니

 

 

 

1 We are, we are, we Artist baby!

한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

 

2 저는 매니아는 아니지만...”

연극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합니다

 

3 장 영화 보기 좋은 날

수직형 통합시스템, 그리고 넷플릭스

 

4 장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블랙리스트 or 화이트리스트, 검열에 대하여

 

5 장 아니 잠깐, 이쯤에서 문학 얘기는 해야 하지 않나?

문학이 문화 콘텐츠가 되지 못하는 이유

 

6 2003년보다 2030년에 가까운, 2017

4차 산업혁명, 예술의 미래





그가 우유에 밥 말아먹는 것 조원효

조원의 횡설수설 에세이


그가 우유에 밥 말아먹는 것

 

 

 조원효




아침식사를 할 때 아버지는 밥과 우유를 한 그릇 안에 말아먹었다. 우리는 식탁 의자에 반듯이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다 말이 길어질 것 같으면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럼 아버지는 출근을 앞뒀는데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들아 마저 앉아라. 너는 뭐가 되고 싶니. 나는 너를 평범한 놈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예로 들면 네가 커서 한국의 시인이 된다고 했을 때. 이 아비는 매우 실망했단다. 난 너에게 커서 뭐가 될래? 라 물으면 네가 파란 코끼리요 목이 짧은 기린이요 따위의 대답을 하길 바랐다.

뭐 그런 거 있잖니. 북한과의 협력을 통해 금강산을 넘나드는 멋진 제트기 비행사, 그런 게 되겠다. FTA 협상이 이뤄질 때, 대한민국 농민들의 분노를 대신해 샌프란시스코 정치인들의 따귀나 때리는 복싱선수가 되겠다. 혹은 길을 걷다 라스베이거스의 2m짜리 농구선수들과 눈이 마주쳐 시비가 붙어도 그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차 혼쭐을 내주는 느긋느긋한 육군 장교가 되겠다. 아버지는 말이야 노태우 정권이 들어섰을 때 밤새도록 시위를 했어. 거기서 엄마를 만났지. 최루탄 가루 속에서 너희 엄마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무릎이 까져 피를 철철 흘릴 때도 너희 엄마는 내 까진 무릎에 빨간 약을 바르며 중얼거렸지. 노태우 정권은 각성하라, 반성하라, 대학생들의 땀과 눈물을 이곳에서 직접 보아라,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전주 한옥마을로 신혼여행을 갔을 땐가. 너희 엄마와 나는 손깍지를 끼고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 밑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단다. 매섭게 추운 겨울이었지. 전봉준 장군의 얼굴엔 기다란 고드름이 붙어있었어. 너희 엄마는 나보고 엎드리라 하더구나. 내 등을 밟고 올라가 전봉준 장군 턱에 붙어있는 고드름을 떼겠다고. 나는 한참을 웃었지. 눈발이 거세게 휘날렸고, 나는 벌벌 떨면서 등을 내주었는데 너희 엄마는 그 고드름을 떼어다가 나에게 삼켜보라고 했다. 이 고드름을 당신이 삼킨다면 뭔가 혁명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고. 아들아 지금 내가 무슨 말하고 있는지 알겠니?

 

 

 

아침 식사가 끝나도

 

 

 

버지는 소파로 가 뉴스속보를 틀었다. 엄마는 설거지를 했고 나는 아버지의 옆에 조용히 앉아 마저 들어야했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말이야. 너무 삭막해. 아버지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휙휙 바꿔가며 말했다. 뭔 말이냐면. 이 아비가 대학을 다닐 땐 동기들 중에 아나키스트들이 서넛 명이 넘었거든. 하루는 극장에 가서 그 자식들과 모던 타임즈를 봤단다. 그런데 그 놈들은 하나도 안 웃는 거야. 이해되니? 철학과, 미학과 동기들은 다 같이 배꼽을 잡고 웃는데 그 자식들만 안 웃는 거야.


영화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무정부주의를 자처하는 남자 녀석과 마주쳤고 우린 대화를 나눴지. 왜 웃질 않느냐. 웃음을 숨기는 저의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그 자식은 그렇게 대답하더구나. 어차피 자기들은 떠날 거니까. 국적도 정치사상도 개입되지 않은 곳으로 사라질 테니까. 웃을 이유가 없다고. 그래서 내가 그런 유토피아가 대체 어딨냐 물었더니. 그 남자애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다 거울을 한 번 쳐다보더니 씨익 웃으면서 말하더구나. 내일이면 알게 된다고. 모던 타임즈를 볼 땐 절대 보지 못한 미소였지.

 

 

 

그리곤 다음 날 아침, 아홉시 뉴스엔 개네들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가 된 채 흘러나왔는데, ○○ 대학교 학생 426일 오전 1138분께 인천 강화군의 한 펜션에서 A(22)씨 등 남자 3명과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여성 1명이 화덕을 이용해 방안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숨져 있는 것을 주인이 발견해 소방당국과 경찰에 신고했다. 펜션 주인은 경찰에서 "퇴실 시간이 넘도록 방문이 잠겨 있고 인기척이 없어 소방당국에 신고 했다"고 진술했다. 어이가 없었지. 듣고 있니 아들아. 나는 고개를 꾸벅꾸벅 떨구며 졸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니까 아나키스트를 자처한 동기 녀석들은 결국 국가와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것은죽음이다, 라는 뻔뻔스러운 결론을 내린 거지.


아비는 말이다. 인간은 결코 죽음에 관대할 수 없다고 봐. 그건 그 새끼들이 취한 정치적 포즈였던 거지. 일종의 포즈. 정치적 신념을 남에게 보여주려면 온전하고 건강한 방법을 찾았어야지. 너희 엄마도 한 때 그들의 회유에 당할 뻔 했다. 그래서 나는 밥을 먹을 때도, 카페에 갈 때도, 너희 엄마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레닌과 마르크스를 번갈아가며 읽어주었다. 사회주의의 위대한 면모를 적극적으로 설파한 거지. 아들아 여기서 부턴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구소련의 공산당과 북한의 유착관계를 파악하려면 김정일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는데

 

 

 

아버지는 출근에 늦었지. 오늘 아침, 그의 입 안엔 밥풀과 우유의 뒤섞임. 그것을 비집고 나오는 슬픈 사회주의자의 입장. 반복되는 아홉시 뉴스. 축 늘어진 소파 가죽. 슬픈 건 헬스를 너무 열심히 한 그의 뇌가 펼치는 딱딱한 진술도. 맥락 없이 걷잡을 수 없는 그의 서사도 아니었지. 단지 그의 입가에  묻어있는 희고 묽은 쌀알. 그 작은 쌀알을 오래도록  쳐다보며 생각한 건 -

 

 

 

커서 아무것도 안하고


길고 부드러운


낮잠을 자야지


아저씨가 되도


죽은 것처럼


물도 안마시고

 

코 골다


베게도 껴안고


오래오래


오래오래


늦잠을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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